창비청소년시선은 2015년 출간한 이래 2025년 올해 십 년 동안 출간되었습니다.
그 기념으로 ‘도넛을 나누는 기분’이라는 창비청소년시선 50 기념 특별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지금까지 청소년시집을 펴낸 적 없는 스무 명의 시인에게 청소년시를 세 편씩 청탁하여 한 권의 시집으로 엮었다고 합니다.
‘창비청소년시선’으로 청소년들이 “시집을 따라 여행하며 자기 안에 또 다른 존재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이 세계 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가 겹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창비교육 공통국어 맨 앞에 있는 오은 시인의 ‘나는 오늘’도 ‘창비청소년시선’의 한 권입니다. ‘나는 오늘’은 자기 안의 또 다른 존재를 발견할 수 있도록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보는 내용입니다.
이 시를 통해 청소년이 스스로 자신을 알아보는 경험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우뚝 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도넛을 나누는 기분’ 시집에서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시를 소개해 드립니다.
함께 엮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음은 어디에서 왔는지
서윤후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오는 숙제가 있었다. 선생님은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마음이 간에 있다고 믿는대. 현지 가이드 아만다가 말해 줬는데 이유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때 기념품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야자수 껍질로 만든 필통을 만지다 네 생각이 났는데 이런 게 정말 마음인 걸까?
집에 놀러 온 조카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해수야,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망설이다 작은 두 손을 가슴에 얹으며 가리켰다. 심상이 거기에 있는 줄도 모르면서……
대문자 T라고 소문난 친구가 마음이란 뇌에 있다고 큰 소리치면서 뇌 과학 연구가 어쩌고저쩌고 말할 때 알아, 하고 듣는 시늉 하며 하품하는 순간 깨달았지. 마음은 몸 안에 또도는 거라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하굣길 친구들 가방에 매달려 흔들리는 키링들
모두 눈 코 입을 찾은 마음
저마다 반짝이는 지비치를 샌들에 달아 놓고 물웅덩이를 뛰어 들어가는 마음
비가 잔뜩 들어 있는 구름처럼 무거워지는 날엔 엎드려 잠만 자고 싶고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면 높은 계단도 두 칸씩 뛰어 내려오는 일
그러나 마음이 있어서 정말 귀찬항.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오늘은 온종일 내가 계속 술래였다.
- 창비청소년시선 50 ‘도넛을 나누는 기분’ 66-67쪽
서윤후의 시작 노트
귀여운 스티커를 어디에 어떻게 붙일지…… 그런 궁리를 하는 게 나는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키링을 가방에 걸고, 어떤 지비치를 크록스에 매달 건지 정하는 일로 삶에게 별명을 불러 줄 수도 있다고 믿으면서요. 그러나 가끔은, 아주 가끔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커다란 일이 시작되고, 보이지 않는 것에 가닿으려고 노력하게 돼요. 그때 인생에도 무늬가 생기고는 하죠. 보이지도 않는 주제에 없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아주 열심히 살아가는 바보 같은 일 또한 삶의 한 부분이니까요. 나는 시를 그렇게 써 왔어요. 볼 수 없는 것을 함께 돌아보자는 약속처럼요.
그러니까 당신이 이 시를 읽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이 시도 당신을 읽어 줄 테니까요.
새가 되는 꿈
황인찬
너는 왜 그렇게 이상하게 걸어?
친구가 물어봤을 때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걸은 건데
어쩌라는 건지
그래서 나는 새가 되어서 날아가기로 했다
올려다보는 애들은 지나
네모난 학교와 지루한 동네를 지나
아주 자유로웠다
공중에선 걸음걸이로 무슨 말을 들을 일이 없었지
다른 새들이 먼저 와서 날고 있었고
그 애들과 꺄루룩 놀다 보니 금세 밤이었다
누구랑 놀다 왔어?
엄마가 물어봤는데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서
꺄루룩, 이라고만 답했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건
비밀이 늘어난다는 뜻이군
하지만 엄마에게
이제 나는 새예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다음 날 학교에 가서는 그냥 걸었다
마음대로 걸었다
그냥 새처럼 걸었고
그게 좋았다
- 창비청소년시선 50 ‘도넛을 나누는 기분’ 80-81쪽
황인찬 시작 노트
내가 십 대였을 무렵, 나는 나의 것이 아닌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여야만 했다. 청소년 퀴어를 위한 문학 작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퀴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 안에서 나 자신의 퀴어함을 겹쳐 보고, 또 쓰이지 않은 자리의 퀴어함을 찾아내는 것이 그 시절의 문학 경험이었노라 말할 수 있겠다. 그 시절의 나에게 전하고 싶은 시를 쓰고자 했다.
도넛을 나누는 기분
유희경
바스락대는 봉투에서
도넛을 꺼내려는
밤의 버스 정류장.
버스는 아직 오지 않고.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아도 좋고.
그런 밤의 버스 정류장.
자, 도넛을 꺼낸다.
그런데 어째서
도넛은 손끝으로 집는 거지.
아슬아슬하게.
까슬
까슬
까무룩
떨어지고 쌓여 가는 설탕 가루.
하얀 그림자 딛고
발끝으로 서는 기분. 하지만
버스는 아직도 오지 않았어.
여전히 밤의 버스 정류장.
꺼낸 도넛을 반으로 가른다.
집으로 돌아가려 함과
집으로 가고 싶지 아니 함처럼.
정확히 나누었는지 묻지 않기.
버스가 오려는 방향 쪽으로
나란히 시선을 두는 것뿐이다.
반절만 건네고, 반절은 물고.
손끝을 비비면서 털어 내면서.
어디서 났는지 묻지 말기.
마실 거 없는지 묻지 말기.
밤하늘에 별이 있다고
사기 치지 말기. 그저
설탕가루가 묻은 입술로
휘파람 불기. 밤의 버스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개를 부르듯 이제
버스가 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 창비청소년시선 50 ‘도넛을 나누는 기분’ 134-135쪽
유희경 시작 노트
기분의 세계는 기분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까닭 따윈 없는 기분. 기분은 좋고 나쁘고, 기분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기분은 오지도 가지도 않고 느닷없고 난데없어서 설명이 되지 않는다.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된다. 시를 쓴다는 것. 또 시를 읽는다는 것 역시 기분의 문제. 나는 네가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지 안혹, 네가 나의 기분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좋겠어. 시를 나눈다는 건 그런 일이라고 생각해. 마음대로 생각해. 어차피 너의 기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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