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교육 공통국어 1-(2) 브로콜리 펀치의 이유리 작가님의 또다른 소설을 소개합니다.
창비교육에서 출간한 창비교육 테마소설 시리즈 '손흔드는 소설'에도 수록된 작품입니다.
(삶으 의미를 상실한 만큼 깊은 상처를 남기는 이별이지만, 희망을 발견하는 소설들을 엮은 테마소설선입니다.)
이유리 작가님의 소설집인 '브로콜린 펀치'(문학과 지성사) 말미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이구아나와 나(이유리)
<줄거리>
수영 강사 일을 하는 ‘나’는 헤어진 연인 ‘재호’가 남기고 간 이구아나를 얼떨결에 떠맡게 된다. 그러다 버림받은 기분으로 집에 들어온 어느 날 왠지 모를 동질감에 이구아나를 쓰다듬게 되고, 이구아나는 ‘나’에게 이구아나의 천국이 있는 멕시코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구아나의 홀로서기를 돕게 되지만, 이구아나와 정이 들면서 이별을 차일피일 미룬다. 결국 ‘나’는 못다 한 말을 삼킨 채 떠나는 상대를 배웅하고 떠난 이에게서 도착한 소식에 안도하며 삶의 용기를 되찾는다. 이 모습에서 우리는 이별을 겪으며 내가 누구였고, 누구여야 하는지를 알면서 조금씩 성장한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이별에도 희망의 얼굴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떠나간 남자친구가 남기고 간 이구아나와 대화를 한다는 황당한 사건이 나옵니다.
펫숍에서 자란 이구아나가 이구아나의 천국인 멕시코로 동해안에서 수영으로 멕시코로 간다는 이야기와 남자 친구와 헤어진 '나'의 이별 극복기가 주 내용이네요.
원준의 손이 마음의 병으로 인해 브로콜리로 변한다는 판타지한 사건과 연결시켜면서, 이별의 상처를 극복하는 '나'의 모습을 살펴 보세요.
또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는 학생들이 유진과 '나'의 이야기, 그리고 '이구아나'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은 도움을 받지 않을까 합니다.
거친 바다를 헤치며 도전한 이구아나가 자신이 원하던 곳인 멕시코에 도달해 나에게 엽서를 보내는 장면이나, 다음과 같은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의 고민을 엿보면서요.
---------------------브콜콜리 펀치 265-266쪽------------------
"나, 수영장 다음 주까지만 나오고 그만둬."
그런 말일 것 같았는데 정말 그런 말이었다. 사실 놀란 만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 며칠 전부터 유진의 태도가 영 이상했다. 매일 오 분 십 분씩 늦게 출근하더니 강습에서는 수강생들을 봐주지도 않고 그저 자유형 배영으로 레인을 왕복시킬 뿐이었으니까. 나도 실은 강습보단 퇴근하고 집에 가서 이구아나와 만날 생각에 더 골몰해 있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유진의 태도가 눈에 띄게 불성실하다 싶었는데 , 결국 그만두는 모양이었다.
"그만두면 무 할 건데?"
정말 궁금해서 물은 건 아니었고 그냥 오랜 직장 동료의 퇴사 소식에 으레 곁들이듯 건넨 말이었는데 유진의 눈이 반짝였다.
"나 필라테스 지도자 자격증 땄어. 필라테스 센터 차리려고."
"뭐? 정말?"
"응, 지도자 자격증은 딴 지 좀 됐어. 이 근처에 괜찮은 자리도 봐놨고."
사실 자격증은커녕 나는 유진이 필라테스를 다녔는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필라테스 센터를 차리겠다니,
"수영, 솔직히 난 미래 없다고 생각해. 매번 머리 말리고 젖은 옷 들고 다니고, 수영복 입고 남들하고 부대끼고, 누가 좋아하겠어? 운동도 예쁘고 깔끔하게 해야지."
유진이 커피를 쪽쪽 빨며 설명했다. 나는 입을 헤벌리고 듣고만 있었다. '자격증'이라는 단어가 주는 산뜻하고 권쥐적인 느낌 때문일까. 유진의 말이 갑자기 엄청나게 그럴싸하게 들렸다. 그러고 보니 이 수영장에 취직한 몇 년 전에 비해 수강생이 현저하게 줄어들기는 했고, 동네 번화가에 한 블록 건너 하나씩 필라테스며 요가 센터가 생기고 있었다. 나 같아도 수영과 필라테스 중에 고르라면 필라테스일 것 같았다. 나는 딱 달라붙는 상하의 차림으로 매트 위에 앉아 날개처럼 우아하게 팔을 펼친 유진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림이 꽤 괜찮았다.
"너나 나나 명색이 생활체육 전공인데, 이런 동에 수영장에서 평생 썩으려고 대학 나온 거 아니잖아. 살길 찾아야지. 너도 잘 생각해. 아직 안 늦었어."
유진이 진지하게 말했다. 뻔한 충고였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유진이 자격증을 따고 센터를 차릴 만한 목돈이 어디서 얻었는지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마도 유복한 부모를 두었거나 대출을 무리하게 받았겠지. 그러나 그런 생각에 이르자 이번에야마롤 진흙을 머금은 듯한 기분이 되었다. 이런 순간에도 나는 고작 이런 생각이나 하고 앉아 있는 사람이구나. 애꿎은 빨대만 질근질근 씹으며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갑자기 아까 이구아나 얘기를 했던 것이 못 견디게 창피했다.
집으로 돌아와 평소처럼 이구아나의 수영을 봐주고 채소를 먹였으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얹힌 묵직한 뭔가가 무게를 더해가는 것 같았다. 나는 끊임없이 아랫입술을 씹어댔다.
사실, 이대로도 괜찬핟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입이 많지 않지만 크게 부족하지도 않았으며 수영은 원래 좋아하고 잘하니까. 이렇게만 계속 살아간다면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이 일에 뼈를 묻을 작정까진 아니었어도 다른 직업을 찾을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상황이 기어코 벗어난 과거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안전해 보이던 발밑이 사실 천 길 낭떠러지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처럼 갑자기 무섭고 아뜩해진 것이다. 나, 이렇게 위기의식 없이 살아도 괜찮은 걸까. 자기가 삶아지는 줄도 모르고 태평한 냄비 속 개구리처럼, 나도 언젠가 인생이 망했고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걸 갑자기 눈치채는 날이 오는 거 아닐까.
하지만 그런다고 당장에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시간은 착착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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